삼성전자 '퍼플오션' 전략 어쨌기에 북미가전 1위?

레드오션 가전시장에서 1인가구·신혼가구 뚫어 쟁쟁한 GE·월풀 따돌렸다!

정리/김혜연 기자 | 기사입력 2017/02/15 [14:25]

삼성전자 '퍼플오션' 전략 어쨌기에 북미가전 1위?

레드오션 가전시장에서 1인가구·신혼가구 뚫어 쟁쟁한 GE·월풀 따돌렸다!

정리/김혜연 기자 | 입력 : 2017/02/15 [14:25]

1990년대 초 삼성전자 가전은 ‘후진국에 싼 값으로 내다파는’ 수준
세계 최대 미국 가전시장에서 2016년 4분기 시장점유율 1위로 우뚝

▲ 다양한 가전제품의 등장은 집 안 풍경을 혁신적으로 바꾼 전환점이 됐다.     © 사진출처=삼성전자 뉴스룸


삼성전자가 소비자 체험 마케팅을 강화하며 미국 프리미엄 가전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지난 1월4일(현지시간)부터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베스트바이 매장에 삼성전자 생활가전 제품들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삼성 오픈 하우스(Samsung Open House)’도 마련하고 소비자들을 맞고 있다. ‘삼성 오픈 하우스’는 대형 가전제품의 경우 한번 구매하면 사용기간이 긴 데 반해 매장에서 실질적 제품 체험이 어렵다는 점에 착안해 기존의 딱딱한 매장 분위기에서 탈피해 보다 편안하게 제품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매장 내 체험공간이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삼성전자는 미국 프리미엄 냉장고의 대표적 제품군인 프렌치도어 냉장고 시장에서 3분기 32.6%의 점유율로 확고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세탁기는 지난해 3분기 19.7%의 점유율로 미국 사업 개시 이후 최초 1위 달성에 성공했다. 특히 드럼세탁기 분야에서 세탁중간에 추가 세탁물을 투입할 수 있는 애드워시 판매 확대로 3분기 27.7%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1위를 달성했다. 삼성전자는 GE·월풀 등 쟁쟁한 글로벌 가전기업들을 물리치고 북미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 비결로 ‘퍼플오션’을 꼽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퍼플오션의 승자가 되는 법’이란 제목의 스페셜 리포트를 통해 레드오션으로 불리던 가전시장을 뚫고 북미시장 1위로 올라선 비결을 공개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그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지난 2005년 ‘블루오션 전략’(원제 ‘Blue Ocean Strategy’)이란 책이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프랑스 유럽경영대학원(INStitut Europ?en d'ADministration des Affaires, INSEAD)에 적을 두고 있던 김위찬·르네 모보르뉴가 공동 집필한 이 책은 과거 100년간 30개 산업군에 걸친 성공 사례를 분석, 공통된 전략을 도출했다.


이 책의 요지는 “성공한 기업은 (이미 포화 상태인) 기존 시장, 즉 ‘레드오션(Red Ocean)’에서 경쟁자와 싸워 이기는 게 아니라 (아무도 나서지 않았던) 신규 시장인 블루오션을 창출해내는 방식으로 큰 이익을 낸다”는 것. 책 출간 이후 블루오션 전략은 그간 기업 사이에서 관행처럼 유지돼온 레드오션 전략과 대비를 이루며 ‘성공하는 기업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야 하는 방향성’으로 급부상했다.

‘팬텀 싱어’ 선전 비결 주목하라
지난해 국내에도 번역·출간된 ‘억만장자 효과’(쌤앤파커스, 원제 ‘The Self-made Billionaire Effect’)란 제목의 책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이 책을 공동 집필한 존 스비오클라(John Sviokla) 익스체인지 소장과 미치 코헨(Mitch Cohen) PwC 부회장은 미국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가 제시하는 전 세계 억만장자 목록을 들여다본 후 되도록 다양한 나라에서 자수성가형 인물 120명을 임의로 선택, 사례분석에 나섰다. 그 결과, 80% 이상이 (블루오션이 아니라) 레드오션에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들은 융통성 없이 레드오션 전략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 아니라 기존 틀 안에서 새로운 기회 공간을 창출해내는 접근법을 택했다.


스비오클라와 코헨은 이들의 전략을 “레드(오션)와 블루(오션)를 합친 보랏빛”으로 규정, ‘퍼플오션(Purple Ocean)’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모든 기업 공간은 사실상 보랏빛 바다, 다시 말해 이미 자리 잡은 관행의 틀에 뭔가 새로운 기회를 덧붙이며 만들어지는 것”이란 게 두 사람의 주장이었다.


얼마 전 종영된 JTBC 예능 프로그램 <팬텀 싱어>를 예로 들어보자. 솔직히 ‘서바이벌 오디션’ 형식을 표방한 TV 프로그램은 지난 10여 년간 지겹도록 많았다. 노래는 물론, 댄스·힙합·패션·요리 등 분야를 막론하고 경연이 진행됐고 카메라는 그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 방영했다. 결과는 ‘피로감’이었다. 실제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시청자는 매년 눈에 띄게 줄었다. 한편에선 “국내 방송가에서 경연 콘셉트는 이미 포화 상태”란 평이 나왔다.


<팬텀 싱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했다. 게다가 목표는 무려 ‘남성 4중창단 선발’이었다. 제작진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안팎의 회의적 반응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종합편성 방송으로선 드물게 5%에 이르는 최고 시청률을 달성한 것.


<팬텀 싱어>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란 레드오션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기회인 ‘블루’ 요소를 도입, 결과물을 ‘퍼플’로 바꾼 덕분이다. 여기서 블루란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이 경쟁 도구로 차용했던) 대중가요에 그치지 않고 정통 성악이나 뮤지컬·음악 등으로 취급 장르를 확대해 한층 폭넓은 시청자를 흡수한 점을 가리킨다.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의 효과가 주는 품질 향상도 빼놓을 수 없다. 성공 요인은 또 있다. 기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집단 경연 후 단독무대’ 형태를 띠어 후반부로 갈수록 경연자 스스로 느끼는 고립감과 피로감이 가중됐다. 반면, <팬텀 싱어> 출연진은 경연이 거듭될수록 자신의 팀을 구축해가며 안정적 유대감을 갖게 돼 공연의 질이 날로 향상됐다.

▲ 삼성전자는 GE·월풀 등 쟁쟁한 글로벌 가전기업들을 물리치고 북미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 비결로 ‘퍼플오션’을 꼽고 있다.     © 사진출처=삼성전자 뉴스룸

 

가전 시장은 대표적 레드오션 분야
레드오션 전략의 상징은 ‘각국 상선 사이, 간혹 해적선도 몇 척 보이는 상황에서 이해관계를 두고 치열하게 경합을 벌이다 유혈 사태가 빚어져 피로 붉게 물든 바다’다. 한정적 이윤을 두고 ‘피 튀는’ 경쟁을 벌이는 시장이란 얘기다. 20세기 후반 이후 이 비유에 딱 들어맞는 분야가 하나 있다. 가전제품 시장이다.


전 세계에서 가전제품의 개발·소비가 가장 먼저 정착된 나라는 미국이었다. 당시 상당수의 미국인은 충분한 경제력을 갖추고도 사회 분위기상 ‘노예처럼 부리는’ 사람을 집 안에 두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실제로 웬만한 미국 가정에선 20세기 초 이미 라디오·TV·세탁기·주전자·냉장고·재봉틀·다리미 따위의 전기제품이 흔히 사용됐다. 20세기 후반 들어선 식기세척기와 의류건조기까지 개발, 일반화됐다. 물론 그 사이 유럽 일부 기업은 진공청소기·전화기 등 품목별로 미국산을 능가하는 제품을 내놓았지만 그 외 국가 기업은 언감생심 그 경쟁의 판에 끼어들지조차 못했다.


이들 구미 선진국이 출시한 가전제품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대체로 크고 튼튼하며 그에 비례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다. 한 번 구입하면 여간해선 쉬 고장 나지 않으며, 심지어 대물림해 쓰는 경우도 잦다. 이 같은 장점은 오히려 제조사 입장에선 단점이 되기도 한다. 시장을 확장시키는 데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미국 가전 기업이 초기부터 시장을 ‘전 세계’로 설정한 건 그 때문이었다. 1950년대 후반 들어 이 무대에 일본 기업이 합류했다. 일본 가전 제조사들은 가전제품 소형화 추세를 등에 업고 ‘사용자 편의성 개선’을 무기 삼아 세계 가전 시장의 주류로 편입하기 시작했다.


한편, 그 즈음 한국은 일제 강점기를 막 지나 6·25 전쟁의 소요까지 거친 후라 스스로 가전제품을 생산해낼 여건이 아니었다. 당시 한국인이 처음 접했던 가전이라곤 군대 내 간이매점(PX, Post eXchange)에서 입수한 미국산 제품, 혹은 밀수입되던 일본산 소형 가전이 전부였다. 6·25 전쟁 도중 피란민이 미군들에게서 입수한 소형 제니스 라디오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였다. 전후 제니스 라디오 가격은 쌀 50가마 값을 훌쩍 넘어섰다. 마을에 제니스 라디오가 있는 집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걸 전화선처럼 집집마다 이어 달아 함께 듣는 풍경이 흔하게 펼쳐지곤 했다.


1960년대 후반, 정부의 적극적 정책으로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국내 기업이 가전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내수 기반은 어느 정도 안정됐고 1980년대 후반부턴 수출 산업의 효자 종목으로까지 꼽히게 됐다. 하지만 1990년대 초까진 여전히 ‘후진국에 싼 값으로 내다파는’ 수준이었다. 고품질 가전이 즐비한 글로벌 시장에서 평가 받는 제품을 내놓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게 여겨졌다. 당시 한 전문 경영인이 기고한 일간지 칼럼 속 우려는 이런 상황에 대한 기업인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가전의 역사 오랜 글로벌 기업 제친 키워드는 ‘가치소비’ ‘소통’ 압축
‘레드오션’ 북미시장에서 1인가구·신혼가구 ‘퍼플오션’ 전략으로 성공

▲ 팀 백스터 삼성전자 북미총괄 사장은 올해 초 ‘2017 CES 컨퍼런스에서’ “북미 지역 TV?가전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엔 고객과의 소통이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 사진제공=삼성전자


‘가전 선진국’ 미국에서 거둔 성과

삼성전자가 세계 최대 가전 시장인 미국에서 지난해 4분기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2016년 한 해를 통틀어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트랙라인(Traqline)’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미국 가전 시장에서 전년 동기 대비 3.5% 포인트 성장한 18.7%(브랜드 기준)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 3분기 연속 1위를 유지했다. 연간 점유율(17.3%) 역시 지난해 전체 1위였다. 세탁기·냉장고 판매 1위를 달성한 데 이어 오븐·식기세척기 등 주방 솔루션 전 제품군 점유율이 동반 상승한 데 따른 성과였다.


국산 가전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입지를 굳히고도 ‘1류 제품’의 위상에까진 이르지 못했던 게 1990년대 초였다. 그리고 2017년, 전 세계 가전 시장 판도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여전히 세계 각국 제품이 자비 없이 경쟁하는 레드오션이란 점은 변함없지만 그 안에서 한국 제품의 존재감은 상전벽해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미국 시장 점유율 1위 달성은 이제까지와 또 다른 성취다. 미국은 가전제품 시장 중에서도 그 규모가 가장 크다. 오랜 가전제품 사용의 역사를 갖고 있어 소비자 취향이 까다롭고 제품 선택 기준이 엄격한 시장이기도 하다. 이런 무대에서 역사가 오랜 선진국 기업들을 제치고 점유율 1위에 오른 비결은 뭘까?
키워드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가치소비’, 다른 하나는 ‘소통’이다. 오늘날 소비자는 (특히 젊은 층일수록 더더욱) 단지 가사 노동 부담을 덜기 위해 가전제품을 구입하지 않는다. 해당 가전이 지닌 가치를 자신의 일상 속으로 도입하려는 생각이 누구보다 강하다. 또한 그런 가치를 또래집단과 끊임없이 소통, 공유한다.


제조사 입장에서 이 같은 변화를 따라 잡으려면 제품의 핵심 기능과 내구성, 심미성(디자인)이란 ‘기본’을 견지하면서도 사용자 입장에서의 편의성을 혁신해야 한다. 아울러 ‘새로운 사용자 경험’이란 부가가치 제공에도 앞장서야 한다.


예를 들어 냉장고 한 대를 만들 때도 삼성전자는 그저 ‘음식(을 차게 보관하는) 저장소’ 제작에 머무르지 않는다. △기기 속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定溫) 기술로 식품의 선도 유지 효과를 극대화해 기능을 차별화하고 △빌트인·메탈 등의 디자인 요소를 도입, 사용자의 생활공간에 잘 녹아들도록 하며 △냉장고가 가족 구성원의 식생활 관리뿐 아니라 가족 간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패밀리허브’ 같은 콘셉트를 고안해낸다.


마케팅 측면에서의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에 앞서 삼성전자는 기존 리테일 네트워크를 유지, 확대하는 동시에 (온라인 소통을 즐기는) 일명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고 온라인 콘텐츠 체험을 확대했다. ‘글로벌 전자 기업’이 갖춘 디지털 기량을 십분 활용한 전략이었다. 이 같은 일련의 노력 덕에 삼성전자는 ‘이미 최대치까지 포화된 레드오션’으로 규정돼오던 미국 가전 시장에서 1인가구나 신혼가구 등의 ‘블루오션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레드오션 분야에 종사하는 기업은 으레 ‘이 분야는 레드오션이니 그에 맞는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경영 활동을 이어간다. 반면, 삼성전자는 누구나 레드오션이라고 인정하는 가전 시장에 뛰어들어 ‘사용자 입장에서 즐겁고 유용한 기술’을 목표로 도전을 거듭해왔다. 동시에 디지털 세상을 선도하는 기술과 문화 구축에도 앞장섰다. ‘가전’이란 붉은 바다를 ‘디지털’이란 푸른 바다와 만나게 했다고나 할까? 반세기에 걸친 노력 끝에 거둔 ‘미국 가전 시장 점유율 1위 달성’은 그래서 더욱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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