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돌린 삼성, 이번엔 순환출자 특혜 논란

지배구조 핵심고리 삼성SDI 주식처분 1000만주→500만주 결론 뒤에 청와대 입김 있었나?

김혜연 기자 | 기사입력 2017/02/09 [15:12]

한숨 돌린 삼성, 이번엔 순환출자 특혜 논란

지배구조 핵심고리 삼성SDI 주식처분 1000만주→500만주 결론 뒤에 청와대 입김 있었나?

김혜연 기자 | 입력 : 2017/02/09 [15:12]

합병 이후 삼성물산·제일모직 둘 다 가진 삼성SDI 고리로 순환출자 되레 강화
‘삼성SDI 500만주’ 공정위 아리송한 유권해석 대주주 이재용 지배력 더 탄탄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뒤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한 승계구도를 만드는 데 성공한 삼성의 안도감은 오래 가지 못했다.    


삼성의 경영권이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넘어가면서 삼성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개편될 것인지는 지난 수년간 초미의 관심사였다. 삼성은 이미 1990년대부터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안전하게 넘기기 위한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이건희의 삼성’이 지녔던 가장 큰 문제는 순환출자를 비롯한 복잡한 출자구조였다. 계열사끼리의 출자구조가 너무나 복잡해서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계열사가 워낙 많고 순환출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데다 대형 금융회사까지 끼어 있어 더욱 복잡했던 것. 그러자 재벌의 순환출자를 해소하라는 사회적 요구가 거세졌다.


결국 2013년 12월31일 재벌기업의 신규 순환출자를 전면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된 공정거래법은 자산이 5조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의 경우 새로운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거나 기존 고리를 강화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합병으로 새로 생기거나 강화된 순환출자 고리는 6개월 안에 주식 처분으로 해소해야 한다.


이 같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첫 적용 대상은 삼성이었다. 2015년 9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계기로 삼성그룹의 순환출자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삼성이 추구하는 새로운 지배구조의 방향을 시사해준 사건이다.


통합 삼성물산은 핵심 계열사인 삼성생명 지분 19.34%, 삼성전자 지분 4.06%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그룹 안에서 삼성생명은 금융 계열사의 최대주주 아니면 주요주주이고, 삼성전자는 비금융 계열사에 대해 그와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말하자면 통합 삼성물산이 삼성그룹의 사령탑에 올라 있는 가운데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통해 삼성그룹의 거의 모든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식을 모두 갖고 있던 삼성SDI를 고리로 한 삼성의 순환출자 구조가 특히 강화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뒤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한 승계구도를 만드는 데 성공한 삼성의 안도감은 오래 가지 못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곧바로 삼성그룹이 삼성물산 주식을 얼마나 처분해야 하는지 유권해석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정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합병 삼성물산 출범으로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고리가 모두 10개에서 7개로 줄었지만 이 가운데 3개 고리는 되레 순환출자가 강화돼 이를 해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이 합병 신규 순환출자에 해당되는지 들여다보겠다고 나섰던 공정위는 어쩐 일인지 위원장 결재까지 받아 2015년 12월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만 처분하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최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하 특검팀)이 공정위가 원래는 1000만주 처분 결정을 내렸다가, 청와대 경제수석실 등 정부의 외압을 받고 그 절반인 500만주로 줄여준 정황을 포착하면서 삼성의 순환출자 문제가 다시금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 공정위 담당 직원의 일지에 이 같은 정황이 모두 기록돼 있었던 것. 특히 김학현 당시 공정위 부위원장이 관련 지시를 했고, 삼성 측과 만남을 가져온 사실도 포착했다.


이에 따라 특검팀은 2월8일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의 집을 압수수색했고 공정위 실무 담당자도 최근 특검팀 사무실로 불러 조사했다. 공정위가 삼성 측에 특혜를 줬고 박근혜 대통령이 삼성의 최순실씨 일가 지원에 대한 대가로 청와대 등을 통해 공정위에 외압을 행사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공정위는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실무자의 일지와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수첩에는 삼성 합병안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를 통과한 2015년 7월10일 ‘경제정책위원회’라는 글씨와 함께 당시 합병을 반대한 ‘엘리엇’의 이름과 ‘정관개정 필요’ ‘5% 신고 규정’ ‘순환출자 해소’ 등의 메모가 적혀 있다.


2015년 12월 금융감독원은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5% 룰’(주식 대량보유 공시의무)을 위반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특검팀은 청와대가 공정위에 외압을 행사한 시기가 삼성이 최씨 모녀 소유의 비덱스포츠에 80억원을 송금한 직후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최지성 실장 등 미래전략실 고위 간부들은 특검 조사에서 처음에는 최씨 일가의 존재를 모른다고 부인하다가 특검팀이 임원들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증거로 제시하자 ‘2015년 8월에 최씨를 알았다’고 번복한 바 있다.


결국 특검팀은 당시 공정위의 조치로 삼성물산 대주주인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강화됐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청와대의 개입 시점이 삼성이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승마 지원에 나선 이후라는 점에서, 삼성이 제공한 돈의 대가성을 입증할 유력한 증거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삼성은 순환출자 문제 심사과정을 두고 제기된 특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처분 주식 규모를 놓고 공정위와 협의한 사실은 있지만, 청와대에 청탁을 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삼성 미래전략실은 2월9일 오전 기자단에게 입장자료를 보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종결된 2015년 9월 공정위의 요청에 따라 순환출자 관련 자료를 공정위에 보냈다”고 시인은 하면서도 “당시 로펌 등에 문의한 결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순환출자가 단순화되는 것이므로 공정거래법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공정위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건을 검토하면서 법규정의 미비 및 해석의 어려움으로 인해 외부 전문가 등 위원 9명으로 구성된 ‘전원회의’를 거쳐 ‘합병 관련 신규 순환출자 금지 제도 법집행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당시 공정위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것으로 삼성SDI를 상대로 주식처분명령 등을 내린 것이 아니라는 게 삼성의 입장이다.


삼성은 “해당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삼성SDI는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를 합병 후 6개월 내(2016년 2월말) 자발적으로 처분해야 하고 자발적으로 처분하지 않으면 그 후에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해 과징금 등을 부과할 수 있었다”며 “삼성은 공정위의 유권해석에 대해 이견이 있었고 외부 전문가들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으나 순환출자를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500만주를 처분했다”고 특혜 의혹을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