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건희의 삼성' 돌아보고 '이재용의 삼성' 내다보기
이건희 시대 26년 6개월 '반도체 신화' 썼지만 한국 경제와 사회 기본질서 흔들어 '삼성공화국' 논란도
기사입력: 2016/09/20 [16:24]  최종편집: ⓒ lovesamsung
김혜연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이건희의 삼성'이 이룩한 성취는 국내 어느 기업도 이룩하지 못한 경지

'신경영' 밀어붙인 결과로 삼성은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성장 기록

▲ 삼성 총수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14년 5월 10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로 현재까지 2년이 넘도록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로 병상에 누워 있다.

삼성그룹 총수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14년 5월 10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로 현재까지 2년이 넘도록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로 병상에 누워 있다. 그 사이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3세경영 체제로 전환할 준비를 거의 마쳤다. 그것은 이미 10여 년 전인 2000년대 초부터 차근차근 진행해온 경영권 승계 작업을 마무리하는 절차였다.

 

삼성그룹의 빛과 그림자

이건희 회장이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앞으로 심신을 추스른다 해도 이젠 70대 중반의 고령이어서 삼성그룹 최고경영자로 복귀해 예전처럼 활동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경영권 승계 준비를 마친 이재용 부회장이 아직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삼성그룹의 3대 총수로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이건희의 삼성’이 막을 내리고 ‘이재용의 삼성’이 막을 올리는 것이다.

 

이런 계제에 삼성의 이건희 시대(1987~2014년)를 돌아보며 평가해보고 그 물질적·정신적 유산을 바탕으로 전개될 삼성의 이재용 시대를 전망해보지 않을 수 없다. 삼성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삼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재벌그룹으로서 좋게든 나쁘게든 나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빛과 그늘이 교차해온 대한민국 경제성장 역사의 한가운데에 삼성그룹이 있다. 그 소유경영권은 이병철 창업회장의 뒤를 이어 이건희가 물려받았고, 이제 3세 이재용이 승계할 찰나에 있다. 삼성은 그간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데다 여러 모로 선두주자 역할을 해왔다. 삼성의 역사와 현주소는 우리 경제의 성과와 한계와 고민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삼성은 거액 투자에 의한 장치산업과 하드웨어 중심의 성장, 내수보다는 수출 위주의 성장을 추진해왔다. 일부 품목에서 세계 정상에 올랐고, 기업으로서도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했다. 그렇지만 이제 국내외 시장에서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삼성의 이건희 시대와 얼추 비슷한 기간에 주로 경제와 기업 관련 기사를 써온 경제전문 기자 차기태씨의 말이다. 그는 최근 삼성그룹의 소유경영권이 2세 이건희 회장에서 3세 이재용 부회장으로 사실상 넘어가고 있는 것을 계기로 ‘이건희의 삼성’을 돌아보고 ‘이재용의 삼성’을 내다본 책을 펴내 주목을 받고 있다.

 

저자는 지난 8월 펴낸 <이건희의 삼성 이재용의 삼성>(필맥)이란 책에 이건희 시대 삼성의 빛과 그림자를 조명하고 경영권 승계 과정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내용을 담아냈다. 치밀하게 전개돼온 그간의 경영권 승계 과정도 되짚어본다.

 

이건희의 삼성, 성취와 비판

이건희 회장은 1987년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넘겨받은 후 2014년 쓰러지기까지 삼성그룹의 경영을 이끌었다. 그 기간은 26년 6개월이다. 이 회장이 삼성을 이끄는 동안 삼성이 이룩한 성취는 사실 지금까지 국내 어느 기업도 이룩하지 못한 경지이기에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 성취는 삼성에 머무르지 않았다. 삼성이 자극제가 되어 전자업종의 다른 기업은 물론이고 다른 산업분야에서도 대기업들이 분발했다. 이들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들의 경영 효율성도 함께 높아졌다.

 

“이건희가 이끌어온 삼성그룹은 많은 성취를 이룸과 동시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런 가운데 삼성그룹을 바라보는 시각도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성취에만 주목하거나 물의를 일으킨 사실에만 매몰되거나 한다. 또 우리 사회에는 삼성이 없으면 나라경제가 망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삼성이 일군 성과도 별것 아니라고 폄훼하는 시각도 엄존한다. 그렇게 시각이 엇갈릴 만한 이유도 충분하다. 우리가 삼성을 바라볼 때 양극단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쏠리고 그것에 현혹되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평가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진실을 탐구하며 알아차리는 것이다. 과도한 칭찬이나 폄훼 모두 해롭다.”

 

저자는 이건희 회장이 선친 이병철 창업회장이 타계한 1987년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내세운 ‘신경영’은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은 1997년까지는 사실상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이건희 회장이 시도한 사업들은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특히 자동차와 석유화학 분야의 사업에서는 부실만 키우다가 결국은 매각 처분해야 했다는 것.

▲ 이건희의 삼성 이재용의 삼성 표지     © 사진출처=필맥

 

“이건희가 1993년 6월 5일 도쿄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탈 때 삼성 최고위급 임원 7~8명이 동승했다. 이건희는 프랑크푸르트로 가기 전에 삼성전자 오디오 부문의 일본인 고문 기보 마사오와 디자인 부문의 일본인 고문 후쿠다 다미오의 보고서를 읽었다. 각각 삼성전자의 공장 상황과 디자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또 세탁기 제조에서 불량품이 발생하는 과정을 다룬 비디오테이프가 이건희에게 전달됐다. 그 내용은 모두 이건희를 화나게 하는 것이었다.

 

이에 이건희는 서울 본사로 이학수 비서실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장과 임원들을 프랑크푸르트로 집합시키라고 지시했다. 이건희의 불호령에 따라 삼성의 핵심 경영진이 서둘러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200여 명의 삼성 고위 임원들은 6월 7일 오후 프랑크푸르트의 켐핀스키 호텔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다. 그 가운데는 이건희의 아들 이재용과 조카 이재현 당시 제일제당 상무, 이재관 새한미디어 사장도 있었다. 회의는 오후 3시 30분에 시작돼 자정을 넘긴 시각까지 계속됐다. 이건희는 이날 ‘공장가동을 중단하거나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근본적인 원인규명과 대책수립을 통해 품질을 세계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자’고 강조했다.

 

이건희는 삼성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이를테면 ‘3만 명이 제품을 만들고 6000명이 수리하러 다니는 비효율 낭비집단은 이 세상에 없다’고 질책했다. 만드는 데 3만 명이라면 수리하는 데는 1000명만 뛰면 될 정도로 불량품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삼성의 당시 현실을 정확하게 짚어낸 말이었다. 이 회의는 삼성에 분명히 큰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것이 ‘신경영’으로 집약됐다.”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이건희의 삼성은 정부와 시장의 압박을 받으면서 부실 정리, 부채 감축, 주력사업 집중 등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실시했고, 그 효과에 힘입어 2000년대에 들어서 비로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특히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대한 기술개발 투자를 꾸준히 계속하여 적어도 메모리 분야에서는 세계시장을 석권하기에 이른 것은 결코 과소평가할 일이 아니며, 그 과정에서 최고경영자 이건희 회장의 역할이 컸다.

 

“이건희가 부르짖은 신경영은 결국 물량주의를 배격하고, 품질향상과 기술개발을 통해 초일류기업이 되어보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라인스톱제는 이를 위한 노력의 하나였다. 그렇지만 불량품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제품의 품질 자체가 향상돼야 초일류기업이라는 목표가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 품질이 향상되지 않으면 아무리 요란한 구호와 수식을 붙여도 그것은 허세일 뿐이다. 그래서 삼성은 제품의 일류화도 꾸준히 추진했다. 신경영 선언 이전에 추진되던 1사1품 운동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더 강력하게 제품의 세계 일류화를 추진했다. 품질이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인식이 모든 계열사에 걸쳐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면서 품질향상 운동이 과거보다 더 힘있게 추진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성과가 조금씩 나타났다.”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이후 삼성이 보여준 또 하나의 두드러진 변화는 국제화다. 이건희 회장은 국제화를 하지 않으면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없다며 적극적인 국제화를 채근했다. 삼성의 외국기업 인수나 해외투자는 이병철 창업회장 당시에도 간헐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이후에 더욱 활발해졌다. 삼성은 이건의 회장의 주문에 따라 해외 여러 나라의 조건과 특성을 잘 검토해 거점을 만들고 여러 업종을 하나로 묶는 복합화·집중화 전략을 쓰기로 했다. 아울러 국내 생산기지를 외국으로 옮기고 외국의 우수한 인력을 과감히 채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렇듯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결과로 삼성은 비약적인 성장을 달성했다. 우리나라 기업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성장 기록을 세운 것이다. 그렇기에 잘하면 삼성이 곧 세계일류 기업의 대열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 같은 성과는 삼성 경영진에게 큰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바로 이때 이건희 회장은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 언론의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문제의 발언을 한다.

 

“우리의 정치인은 4류 수준, 관료행정은 3류 수준, 기업은 2류 수준이다. …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나라는 2류 수준 국가에도 끼지 못할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1995년 4월 중국 방문 중에 한 이 발언은 국내 신문에 크게 보도됐고, 청와대를 발끈하게 했다. 이 때문에 좋아 보였던 김영삼 정부와 삼성의 관계가 난기류에 휩싸이게 됐다. 이건희 회장의 발언은 과도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삼성에버랜드는 2014년 제일모직으로 ‘변신’했다가 삼성물산과 합병했다. 합병회사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등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들을 호령하는 기둥회사가 됐다. 사진은 삼성물산 사옥 입구.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와 원죄

“1996년 10월 30일 삼성에버랜드는 이사회를 열어 계열사 주주를 상대로 전환사채(CB) 125만4000주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나름대로 계산을 거쳐 1주당 7700원의 전환가격으로 1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 결정은 이후 10여 년 동안 숱한 논란의 불씨가 된다.”

 

삼성에버랜드가 발행하기로 한 전환사채에 대해 삼성전자, 삼성물산, 제일모직, 중앙일보 등 기존주주 26명이 모두 실권한다. 당신 13.16%의 지분을 갖고 있던 이건희 회장도 자신에게 배정된 13억원어치를 인수하지 않았다. 다만 삼성의 울타리 밖으로 빠져나간 제일제당(현재의 처)만이 인수했지만, 그 지분은 약소했다. 그 결과 기존주주가 가지고 있던 주식의 97%가 실권됐다.

 

그러자 1996년 12월 3일 이사회가 다시 열려 기존 주주들이 실권한 전환사채를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을 비롯해 딸 이부진, 이서현, 이윤형 등 4남매에게 넘긴다. 이재용의 인수자금은 불과 48억원이었다. 이부진, 이서현, 이윤형은 각각 16억여 원을 투입했다. 이에 따라 삼성에버랜드의 주주구성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이재용은 인수한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함으로써 31.9%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가 됐다. 이재용 4남매가 삼성에버랜드에 튼튼한 성을 구축하게 된 것이다.

 

“요컨대 삼성에버랜드는 1990년대까지는 매출이나 재무구조 측면에서 우량기업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비상장 회사였으므로 다루기 쉽고 주주들의 감시를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이건희는 바로 이 점을 이용한 셈이다. 삼성에버랜드는 이건희가 비교적 적은 돈을 들이고도 이재용 남매에게 그룹 지배권을 넘겨줄 수 있게 해준 ‘전략요충’이었던 것이다. 이재용 남매가 삼성에버랜드에 대한 지배권을 큰 돈 들이지 않고 넘겨받은 이후 그 전략요충을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차원에서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그 매출과 기업가치를 끌어올렸다. 전환사채 발행을 통해 삼성에버랜드에 대한 지배권을 이재용 남매에게 넘겨온 과정은 이처럼 변칙적이었다.”

 

삼성에버랜드는 2014년 제일모직으로 ‘변신’했다가 삼성물산과 합병했다. 합병회사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등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들을 호령하는 기둥회사가 됐다. 명목상으로는 지주회사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지주회사나 다름없다.

 

1996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변칙 발행을 시작으로 삼성이 이후 진행해온 그룹 소유·지배권의 우회상속 과정은 삼성에 대한 국민적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삼성의 ‘이재용 시대’에 원죄와 같은 것으로 남게 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그 원죄를 극복하고, 삼성을 우리 국민 모두가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기업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까?

 

전용기 내다판 이재용, '선택과 집중'으로 삼성그룹을 이끌어 가려는 움직임

바이오 등 '이재용표 신사업' 성과가 삼성에 어떤 결실 가져올지 아직 미지수

이 부회장, 소유경영 체제와 전문경영 체제 장점 결합해 ‘좋은 경영’ 실천을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사실상 인수한 이재용 부회장은 ‘선택과 집중’으로 그룹을 이끌어 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재용의 삼성, 선택과 집중

“삼성의 경영권을 이미 사실상 인수한 이재용은 해외출장 갈 때도 전용기를 타지 않고 일반 항공편을 이용한다고 한다. 삼성은 보유하고 있던 항공기 3대를 아예 처분했다. 그렇지만 그런 사소한 것보다는 삼성의 사업구조나 사업방식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은 ‘선택과 집중’으로 그룹을 이끌어 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화학부문을 한화그룹과 롯데그룹에 넘긴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내부거래로 먹고살다시피 해온 광고기획사 제일기획은 한때 매각 대상이 됐다. 그렇게 함으로써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력 제조업 분야에 힘을 쏟으려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바이오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물론 우려도 크다. 반도체와 달리 의약품은 세계 각국에 규제가 다양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영향력과 경쟁력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신사업에 대한 성과가 삼성그룹에 어떤 결실을 줄 것인지는 한국 재계만이 아니라 세계 경제계에서도 주시하는 부분이다.

 

“앞으로 이재용에게는 크고 작은 도전들이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화학 사업처럼 다른 사업도 과단성 있게 정리하도록 요구받을 수도 있다. 부실상태이거나 만성적자를 내는 기업의 경우 다른 계열사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때로는 일부 계열사를 대가 없이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경제민주화 요구가 강력해지는 등 시대의 새로운 흐름도 과거처럼 경영권 승계나 손쉬운 일감 몰아주기를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무리한 승계 과정으로 인한 업보를 짊어져야 할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이를테면 통합 상성물산의 경영실적이나 주가가 회복되지 않고 계속 악화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삼성이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넘어간 것과 같은 불투명한 방식의 기업 소유경영권 승계가 앞으로는 되풀이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이재용 부회장이 3세 총수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소유경영 체제와 전문경영 체제의 장점을 결합해 ‘좋은 경영’을 실천함으로써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동시에 사회적 책임도 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것이 삼성의 창업자 가문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으면서 삼성과 나라경제의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삼성이 앞으로 현명한 경영권 승계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창업자 가문의 지분이 장래에 감소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합리적인 지배구조를 짜야 한다. 창업자 가문이 소수지분만 갖더라도 창의적이고 의욕적인 전문경영인과 함께 ‘좋은 경영’을 설계하고 실천하는 길을 가야 한다. 그것이 창업자의 노고가 오래도록 존중을 받으면서 삼성과 대한민국이 오래도록 함께 번영하는 길이다."

광고
ⓒ lovesamsung.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