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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하게 시린 겨울은 살을 도려낼 듯한 차가운 날씨뿐만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거부감. 법이란 단어로 스스로를 포장하고 정의를 외면하는 모습. 어떤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겠다는 단순화된 고정관념. 이런 모든 것들이 이 겨울을 더욱 춥게 만든다. 여기 겨울이기 때문에 추운 것이 아니라 겨울이라고 믿게 만드는 세상이 더 춥고 잔인하다는 사람들이 있다. 매일 아침 삼성 SDI(부산공장)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 사람, 송수근과 아내 박미경에게도 추운 날씨보다 더 싸늘한 시련들이 혹독한 겨울을 실감케 하고 있다. 박미경은 삼성SDI 해고자 송수근의 아내다. 송수근은 삼성SDI(구 삼성전관)에 11년 동안 성실히 근무하면서 97년, 98년 2년간 노사협의화 노동자 위원으로 당선돼 적극적인 노사협의회 활동을 벌여왔다. 98년 회사측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반대해 투쟁하고, 노사위원들과 함께 서울 본사까지 상경해 항의하자 삼성SDI는 말도 안되는 해고사유를 내세워 98년 9월 24일자로 징계해고 했다. 이에 대해 송수근은 98년 11월에 있을 노사협의회 근로자 위원장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에 앞서 미리 해고시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 송수근의 집회 개최를 막기 위해 납치·강금·회유·협박·강요 등을 일삼았다는게 송수근의 주장. 이밖에도 송수근을 지지하고 노조설립의 뜻을 가진 현장 노동자들에게도 상상살 수 없는 탄압을 자행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물론 삼성SDI는 정당한 사유에 따른 해고조치였다는 입장. 송수근은 해고무효소송에서 회사측이 내건 4가지 해고 사유 중 해고 사유가 될 수 없다는 2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이유에 대해서도 "사내기업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외출을 3회 했던 것과 2차 복리후생 삭감에 대한 항의를 하기 위해 서울 본사로 항의방문 했던 것을 '무단 이탈'이라고 한 것은 해고의 정당한 사유가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송수근의 아내 박미경은 지난 2000년 6월부터 9월까지, 이듬해인 2001년 11월부터 2003년 4월 남편 송수근이 구속수감 중일때 남편을 대신해 삼성SDI(부산공장)에서 1인 시위를 대신했다. 최근 11월 송수근이 오랜 구속 수감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병원에 입원중일 때도 그녀가 대신해 1인 시위를 벌인바 있다. 박미경은 올 4월부터 인터넷 오마이뉴스 회원으로도 활동중이다. 현재 송수근은 투쟁과 구속을 반복하다 두 차례 걸쳐 감옥살이를 했고, 현재 아내 박미경과 함께 해고와 구속후 살아가는 흔적들을 홈페이지(http://www.antisdi.com)를 통해 속속들이 남기고 있다. 2004년을 마무리하면서 러브삼성에서는 삼성을 사랑하다 못해 삼성을 미워하게 된 한 남자의 아내가 애태우며 쓴 편지를 게재해 볼까 한다. <편집자주> ▲12월 20일 "국회 앞에서 날아온 편지 한 통" 며칠 전입니다. 여의도 국회 앞에서 보낸 한 통의 편지가 집에 배달되었습니다. 봉투를 본 순간 무슨 홍보물이 담긴 편지인줄 알았습니다. 현재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국회 앞에서 단식 중인 민주노동당의 친한 동생의 편지였습니다. 저는 요즘 삼성SDI 현장 노동자들과 해고자가 함께 준비하는 하루주점 행사 때문에 많이 바빴습니다. 이런 저에게 동생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과 국보법 폐지의 굳은 각오를 편지에 담았더군요. 그러나 평소 예쁜 글씨체와는 달리 단식으로 인해 힘이 없어서인지 조금 흘려 쓴 글이었습니다. 편지를 읽으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 동생은 제 남편이 구속된 시기에 함께 생활한 적이 있습니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고 감기에 잘 걸리는 체질이라 겨울을 싫어했습니다. (중략)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국가보안법이 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데 구조조정에 반대하다 삼성SDI에서 해고된 남편이 명예훼손죄 등으로 두 번째 구속되었을 때였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 민주노동당 지구당이 새로 창당을 한 것입니다. 당원들과 자주 교류하면서 국가보안법의 무시무시함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노동 운동하는 노동자들도 얼토당토 않은 이 법으로 장기간 옥살이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말을 들으며 덜컥 겁이 났습니다. '남편이 출소 이후 '걸면 걸리는 국보법'으로 세 번째 구속되면 어쩌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현재 단식 농성중인 이 동생이 '영남위원회 사건' 내용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영남위사건'은 대법원 판결 결과 이미 옥고를 치른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조작 가능성이 농후한 사건이었지요. 노동운동을 하면서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과 북한에 어린이 성금 보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장기간 구속을 시켰으니까요. 재판 과정과 민가협 어머님들의 집회. 그리고 포승줄에 묶여 버스에 오르는 재소자의 모습과 이들의 부모와 아이들의 고통이 담긴 내용을 보면서 당시 처한 우리 가족 생각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이 땅에서 노동자, 서민들이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애국자로 살아가는 데에는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영상이었습니다. 문득, 제가 중학생이었던 지난날이 떠올랐습니다.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이었지요. 골목길을 혼자 걸으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을 불렀습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스치더군요. '내가 통일 노래부르는 것 누군가가 듣고 신고하면 어쩌나…' 하고요. 누가 따라오나 휙 뒤를 한번 돌아본 뒤 쏜살같이 집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진땀을 흘리면서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당시 사람들이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던 죄명들이 모두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마음에 통일 노래 한 곡 부르면서도 겁을 낼 정도였으니까요. 남편이 출소한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저는 지역의 노동단체 사람들과 함께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해 응원을 했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렸지요. "북한 응원단들이 단일기를 흔들 때 가슴 벅찬 감동이 일었다"는 내용으로…. 글을 올리면서도 은근히 '이러다 나도 국보법 위반으로 잡아가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더군요. 국가보안법은 반민주적이고 반인권, 반통일적인 악법입니다.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나라에서 국보법이 존재하고 한 민족을 적대시하는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노동 운동하는 노동자, 학생들이나 인혁당, 민혁당 사건 등을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국보법이라는 이름 아래 억울하게 감옥에서 고통받거나 희생되었습니다. 거론할 가치조차 없는 악법 때문에 말입니다. 지금도 많이 늦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완전 폐지되어 국민들이 국보법으로 인해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오늘부터 기온이 뚝 떨어진다고 해서 걱정이 큽니다. 국보법 폐지 단식에 동참하지 못해 많은 분들께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12월 10일 오전 4시59분 "다르지만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해" 2주간의 입원 치료를 받은 남편이 11월 말 경 퇴원했습니다. 더 치료를 받으면 좋으련만 날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병원비를 걱정한 남편은 "오래 누워 있을 수 없다"며 퇴원을 서두른 것입니다. 남편은 퇴원 후, '울산인권마라톤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행사는 12월10일 세계인권 선언의 날을 기념하기 위한 대회입니다. 저는 몸도 안 좋은데 가지 말라고 했지만 남편은 "의사가 걷고 뛰는 것은 괜찮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지난 5일(일) 아침이었습니다. 꿈나라 여행하느라 바쁜 제게 남편이 묻습니다. "미경아, 내 마라톤 옷 못 봤나?" "몰라. 내가 어디에 놔뒀는데 기억이 안 난다. 잘 찾아봐요." 저는 눈도 뜨지 못한 체 겨우 대답했습니다. 남편이 장롱과 서랍을 열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 같더니 이내 조용해집니다. 집을 나선 것입니다. 정오가 다 된 시간이었습니다. '울산인권마라톤대회'에 참가한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5km 뛰려고 했는데 이왕 뛰는 것 10km 뛰어버렸다. 그런데 메달을 5km로 잘못 받아왔다." "다시 가서 메달을 바꿔올 수도 없고…." 역시!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가는 남편의 끈기는 정말 못 말립니다. 아이에게 수화기를 건네주니 아이가 신난 듯이 말을 합니다. "아빠! 또 금메달 땄어요?" 남편은 마라톤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운동이 취미라 평소에도 부지런히 동네 산을 오르며 체력을 다진 남편이었기에 완주가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5월에도 남편은 '부산하프마라톤대회'에 첫 참가해 10km 완주한 적이 있습니다. 버스가 대회 시간에 늦게 도착한 바람에 준비운동도 하지 못한 채 뛰고서도 말입니다. 남편은 지난 여름 울산인권운동연대에서 열린 '인권학교'에 초청된 적이 있습니다. 해고 이후, 남편이 당했던 사례 중 감시와 미행, 집회방해, 휴대폰 위치추적 등에 대해 심각한 인권침해와 관련된 사례를 참가자들에게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교도소에 수감 중일 때도 재소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시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나이 어린 교도관으로부터 반말과 욕설을 듣기도 했으니까요. 물론, 항의한 결과 사과를 받았다고 하지만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권을 짓밟히는 경우가 무수히 많습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을 당하기도 합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하거나 비정규직, 실업자, 해고자, 여성, 노약자, 가난하다는 이유로 소외되거나 무시나 경멸을 당하기도 합니다.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적시되어 있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돈과 권력을 거머쥔 자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가혹한 형벌을 내리기도 하니까요. 사람의 가치보다는 물질이 우선 순위가 된 듯한 요즘의 각박한 사회에서 우리들은 많은 인권침해를 당하며 살고 있습니다. 정말 살 맛 나는 세상, 사람의 정이 물씬 풍기는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자신과 타인의 소중한 인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 2004년 12월 10일 오전 2:59 "지금까지 꿋꿋하게 잘 견뎌왔는데" 얼마 전이었습니다. 입원한 남편 대신 아침 일찍 삼성SDI 앞에 가서 1인 시위를 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를 깨웠습니다. 전날 미리 해둔 밥을 아이에게 먹이며 쌀독을 열어 보았습니다. 바닥이 훤히 보였습니다. 모아 보니 한 주먹 정도 밖에 안되더군요.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준 뒤 어머님이 계신 시골로 차를 몰았습니다. 쌀을 가지러 가기 위해서입니다. 시골집에 도착하니 어머님은 방에서 TV를 보고 계시더군요. 방에 들어가니 어머님이 제게 묻습니다. "와 왔노. 아는 괜찮나." "네. 쌀 가지러 왔어요. 병원에서 물리치료 받고 항생제 주사 맞으니 조금 나은 것 같다고 하데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큰일이다. 감옥에 있을 때 누가 때린 거 아이가." "아니에요. 첫 구속 후, 몸이 안 좋아 치료받고 있었는데 회사가 명예훼손으로 또 고소하는 바람에 두 번째 구속돼 몸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어요." 어머님과 마당에 나와서 지난번에 심은 배추를 보았습니다. 제법 많이 자라 있더군요. 어머님과 함께 방앗간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앞서 걷는 어머님의 구부정한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언제나 어머님은 당신의 막내아들 걱정에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지 않고 가정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투쟁에만 신경 쓰는 막내아들이 많이 미우실 겁니다. 감옥까지 갔다 오고 건강까지 나빠져 어머님에게는 불효막심한 자식이 되고 말았으니까요. (중략) 방앗간에 도착하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주인이 없습니다. 이웃의 어르신 한 분이 방앗간 옆에 있는 방에서 콩을 고르고 계시더군요. 그 분이 웃으며 말씀하십니다. "나도 손님으로 왔는데 주인이 잠깐 나가면서 올 때까지 콩에 있는 돌 고르라고 하데." 저도 돌을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르신이 "그 큰 회사 상대로 싸우면 노조에서 좀 도와 주냐"고 물으시더군요. "삼성에는 노조가 없어요. 노사협의회라고 있긴 한데 아무 도움도 안 돼요"하고 말씀 드렸습니다. 몇 분 지난 뒤 방앗간 주인이 불렀습니다. 나가 보니 저희 차량에 쌀 한 가마를 실어 놓았더군요. 어머님을 집 옆 인도에 내려 드린 뒤 서서히 가속기를 밟았습니다. 차츰 멀어지는 어머님의 쓸쓸한 모습을 백미러로 보았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결혼 전부터 남편의 머릿속에는 '사원들'밖에 없습니다. 말을 할 때도 언제나 '우리 사원들'이라고 말을 합니다. 아예 버릇이 되어버렸지요. 98년 한 해 수천억 원 흑자를 내는 기업이 노사협의 한 번 없이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사원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다 해고당한 남편. 투쟁과 구속을 반복하다 아픈 남편을 생각하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서러움이 한없이 밀려들었습니다. (중략)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린 법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족 중 어느 한 사람이 아프면 곁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그 고통이 고스란히 전이되는 모양입니다. 힘 없고 배경 없는 사람에게는 건강이 큰 자산이니 오늘부터는 거울을 보고 밝게 웃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마음이 밝아지면 고통의 무게도 줄어들 테니까요. ▲2004년 12월 08일 오전 01시 20분 "삼성SDI는 무엇이 두려운가!" 그렇게 자신이 없나? 왜 사원들의 개인적인 모임마저 방해하며 못살게 구느냔 말이다. 12월 18일은 삼성SDI 현장 모임 주최로 언양에서 처음 열리는 삼성해고자 후원을 위한 일일 주점이다. 그런데 회사에선 자의적으로 왜곡 해석하면서 '노조결성의 전초모임'이라며 현장 모임 사원들을 맨투맨(man to man)방식으로 접근해 괴롭히고 있다. 현장 사원의 가족까지 동원하고 부모를 찾아가 "당신 아들 12월 18일 모임에 참석하면 해고감"이라며 협박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보아하니 SDI 일부 경영진들이 출세하고 싶은 모양이다. 무노조를 지향하는 삼성본사에 "노조 결성 움직임이 보인다"고 알려, 일부러 큰 난리라도 난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한마디로 '난리 굿∼' 삼성SDI 그렇게 자신이 없나? 노조가 있는 회사 같으면 해고자 주점에 노조위원들이 적극 나서서 사원들에게 모임을 홍보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SDI는 어떠한가? 무노조에 근무하는 노사위원들마저 회사와 한통속이 되어 한심한 노릇을 보이고 있다. 삼성SDI가 사원들에게 떳떳하다면 퇴근후의 사적인 모임까지 일일이 방해하며 탄압을 일삼지는 않을 것이다. 죄지은 게 많으니 해고자와 일부 사원들을 미행하며 감시를 하는 것이다. 뭐든지 일류 좋아하는 삼성. 삼성의 노동탄압 또한 국내 초 일류 자리를 고수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합법적인 노조건설마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하는 것 하나만 보더라도 삼성의 비열함에 혀가 찰 노릇인데 말이다. 사원들에게 떳떳하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해마다 수천억 흑자를 내면서도 회사가 어렵다고 거짓 핑계대면서 비정규직으로 강제 전환한 사원들이 도대체 몇 명인가? 지은 죄를 숨기려다보니 삼성의 탄압은 끝이 없다. 삼성SDI는 치졸한 방법으로 노동 탄압하는 작태를 당장 중단해야 할 것이다. ▲ 2004년 12월 08일 오전 00시 55분 "위험에 처해 있는 자가 충성심을 보이는 법" 밖에서 시위하는 사람 즉, 송수근을 매도하는 글을 SDI 내 싱글에 올린 과장이란 자가 있다. 글 내용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그 자의 자리가 불안한 듯 했다. 그 자의 글 내용중 아주 가소로운 부분이 있다고 한다. "처음엔 오죽했으면 저럴까하고 바라보고 가족들까지 나서서 투쟁할 때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는데 오랫동안 투쟁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직업적'으로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단다. "직업적으로?" 어리숙한 한 모 과장은 똑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직업이란,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이다. 일정한 급여를 받으면서 말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 과장 회사 떠날 날이 머지 않았나 보다. 나이는 많고 능력은 없고 밑에서 치고 올라 오니 불안한 마음에 회사를 위하는 용기백배(?)한 글을 올렸나? 누구보다도 깨끗한 송수근을 매도하면서까지 회사에 잘보이려고 노력하는 걸 보니. 또 송수근이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려고 투쟁하는 것 같다고? 어느 정신나간 인간이 두 번이나 감옥신세 지고 부모와 아내, 자식에게 피눈물 남기고 몸까지 망가지면서 7년의 세월을 투쟁하고 있겠는가? 가족의 안위는 뒷전이고 오로지 사원들을 위해 온갖 고통 감수하며 투쟁하는 송수근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못 봤나? 명예퇴직 위로금 몇 억씩 받고 퇴사해서 근사한 가게 차리고 살아가는 일부 사원들 말이다. 한 과장은 삼성의 당근과 채찍 수법을 모르나보군. 고분고분 회사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사원들에게는 당근을 주고,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고 사원들을 위해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채찍을 가하는 수법을 말이다. 삼성의 간부들은 얼마나 많은 세뇌 교육을 받았는지 의식수준을 보면 꼭 ○○○당 사람들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편협한 사고를 지닌 한 모 과장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이제 그만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보렴" ▲12월 8일 오전 2시 "나의 에너지를 모두 전해주고 싶다" 새벽에 집에 막 들어오면서 컴 앞에 앉아 신나게(?) 자판 두들기는 내게 묻는다. "안자고 또 뭐하노." 그냥 씩 웃고 말았다. 방에 들어가면서도 이상한듯 내 얼굴을 몇 초간 더 바라본다. 내 얼굴이 일그러져 있어도 언제나 묻지 않는다. 너, 나 우리 아이 모두 서로에게 아픈 마음을 숨기기만 한다. 우리 모두 건강하면 얼마나 좋을까. 평생을 투쟁하며 살아간다 해도 나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적극 지지할 것이다. 빨리 건강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몸이 아프면서도 아무런 내색도 않고 새벽까지 바쁘게 활동하는 너를 보면 마음만 아프다. 나에게 조금 남아 있는 에너지를 너에게 모두 전해주고 싶다. ▲ 2004년 12월 05일 오전 02시 37분 "유인물 회사에 제출하면 한 장에 3만원?" 몇 년 전 송수근의 부당해고와 삼성의 집회방해 사진 등을 실은 홍보물을 사원들의 집으로 우편 발송 한 적이 있습니다. 그당시 삼성에서는 사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지요? "유인물 봉투 안 뜯고 회사에 제출하면 한 장당 3만원 주겠다" "유인물 개봉 한 것은 2만원 주겠다" 그래서 유인물 많이 거뒀습니까? 삼성SDI, 12월 18일 언양 63부페 1층 호프에서 열리는 하루 주점 티켓은 현재 얼마를 주고 거두고 있나요? ▲ 2004년 12월 05일 오전 02시 32분 "감춘다고 모르나?" 삼성의 전.현직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위치추적 고소.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 마당에 아직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검·경찰이 삼성과 한통속이라는것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너무 티 내는것 아닌가요? 다른 사건들은 일사천리로 마무리짓는 검찰이 왜 이렇게 미적거립니까? 범인이 삼성이 아니었다면 벌써 결과가 나왔을텐데 말입니다. 감추려고 노력할수록 더 속보인다는 사실을 모르는지... 검찰이 위치추적 고소한 삼성 현직 노동자에게 "왜 삼성을 고발했냐?"고 물었다지요? 누가 삼성을 상대로 고발했나요? 성명불상자이지... 검찰도 참 단순합니다. 물어보려면 미리 생각좀 하지않고선. 뻔한 사실을 감추려고 척척 호흡 맞추는 삼성과 검찰은 서로 무슨 관계죠? 어떤 시민이 말하더군요. "그거 뻔한 거 아이가? 삼성이 위치추적 했지 누가 했겠노." <저작권자 ⓒ lovesamsung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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