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마니아, 헬스 하드웨어 개발자가 되다

강지원 기자 | 기사입력 2019/01/17 [16:48]

스포츠 마니아, 헬스 하드웨어 개발자가 되다

강지원 기자 | 입력 : 2019/01/17 [16:48]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최고로 꼽는 것에 ‘인생’이란 접두어를 붙인다. 인생 맛(술)집, 인생 노래, 인생 샷(사진)… 진짜 본인 인생 전부를 걸었단 말인지, 아니면 지금껏 살아오며 만난 ‘베스트 아이템’이란 뜻인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적어도 ‘인생’이란 단어가 갖는 무게감을 떠올리면 예사롭게 넘길 대상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하다.

 

내게도 ‘인생 영화’가 한 편 있다. 2013년 개봉한 영국 영화 ‘어바웃 타임(About Time)’이다.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인생은 소중한 하루의 연속’이란 사실을 깨달아가는 로맨틱 코미디다.

 

대다수 관객에게 이 영화는 남녀 주인공 ‘팀’과 ‘메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달콤한 장면’으로 기억될 것 같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된 장면은 따로 있다. 메리와 두 번째로 만나던 날, 팀은 메리에게 직업을 묻는다. “출판사에서 책 읽는 일을 한다”고 대답하는 메리를 향해 팀은 장난스럽게 되묻는다. “그럼 그냥 평범하게 책을 읽을 때엔 어때요? 메뉴판을 읽을 때, 신문을 읽을 때는요? ‘읽는’ 게 일인데 그런 상황에선 돈도 못 받잖아요.” (기억을 더듬어 정리한 거라 정확한 대사와는 다를 수 있다.) 얼마든지 가볍게 따라 웃고 지나칠 만한, 지극히 평범한 장면이다. 하지만 당시 난 그 대사를 접한 후 한동안 생각에 잠겼었다.

 

건강은 어디에나 있다(Health is everywhere)!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의 구분을 떠나 ‘일을 하며 돈을 번다’는 건 중요하고도 행복한 사실이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건강 관련 하드웨어 개발 업무를 맡아 5년째 근무하(며 돈도 버)는 나 역시 그런 면에서 틀림없이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듯 대학 시절 전공 공부에 매달릴 때만 해도 내가 이 일을, 그것도 5년씩(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요즘은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 기기에도 헬스케어(healthcare) 기능이 속속 탑재되는 추세여서 내가 속한 부서에도 다양한 업무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내가 맡은 분야는 △심박수 △경피적산소포화도(SpO2)[1] △수면 △자외선 등에 관한 기능 개발이다. 사실 난 자타공인 스포츠 마니아다. 그런 내가 헬스 하드웨어 개발 일을 하고 있다. 내 모든 일상에 건강 관련 지식과 업무가 비집고 들어와 자리 잡았단 뜻이다. “메뉴판이나 신문을 읽는 건 일이 아니지 않느냐”던 팀의 질문처럼, 메리가 자신의 업무라고 말한 ‘읽기(reading)’가 어디에나 있는 것처럼.

 

난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아침에 일어나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이나 수영을 한다. 그 덕에 밤엔 ‘꿀잠’을 이룬다. 주말이면 등산이나 사이클을 즐기고 여름엔 서핑 하러, 겨울엔 스노보드 타러 야외로 나간다. 그리고 그때마다 생각한다. ‘러닝머신에서 특정 자세로 뛸 때엔 정확도가 안 나오네. 왜 그렇지?’ ‘해발 20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서 SpO2는 평지에서보다 낮게 측정될까?’ ‘스노보드 탈 때 눈에 반사되는 자외선은 햇볕보다 더 위험할까, 아닐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실제로 그런 생각에 기반해 업무에 필요한 테스트를 진행한 적도 있다, 이를테면 아래 사례처럼.

 

스노보드 타다 눈 다친 경험 살려 ‘업무 테스트’

 

언젠가 날씨가 아주 좋은 겨울의 어느 주말, 1박 2일 일정으로 친구들과 스키장을 찾았다. 스노보드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슬로프를 몇 차례 오르내리다 보니 고글에 습기가 차 불편했다. 그래서 고글을 헬멧 위로 올리곤 다시 쓰는 것도 잊은 채 종일 스노보드 즐기기에 몰두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갑자기 알 수 없는 통증이 느껴지면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어제 저녁 숙소에서 구워 먹는 바비큐 연기가 눈에 들어갔나?’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통증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가라앉을 줄 몰랐다. 급기야 앞도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 돼 공포스러운 맘을 안고 곧장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의사는 내가 광각막염(光角膜炎)에 걸렸다고 말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광각막염은 너무 강한 햇빛이나 용접 과정 등에서 발생하는 자외선으로부터 눈이 충분히 보호 받지 못해 눈에 통증이 오는 증상이다. 내 경우, 고글을 쓰지 않고 스노보드를 타는 동안 눈밭에 반사된 자외선이 눈으로 들어와 각막을 자극한 게 문제가 됐다.

 

당시 내가 진행 중이던 업무가 자외선에 관련돼 있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 컸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자외선만 조심해야 하는 게 아니었구나!’ 실제로 조사해보니 스키장 같은 눈밭이나 얼음판에서 반사되는 햇빛은 전체 양의 80%, 많게는 90%에 이르렀다. 그날 이후 내가 속한 팀에선 스키장을 직접 찾아 자외선 측정 테스트를 진행했다. 좋아하는 걸 일로 하며 제대로 시너지가 난 경험이라고나 할까?

 

운동하는 걸 좋아해 그와 관련된 일을 맡게 된 건지, 그저 우연히 지금 업무를 만나게 된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이 어느덧 단순한 업무를 넘어서서 내 삶의 일부가 됐단 사실이다. 삼성전자 뉴스룸 독자들과도 이 공간을 통해 그런 얘길 함께 나눌 수 있게 되길 바란다.

 

[1] Saturation of percutaneous Oxygen. 손가락 끝이나 귓불에 맥박산소측정기를 장착, 측정한 동맥혈산소포화도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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